이씨 (광주)

한국주요성씨


이씨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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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廣州 이씨


광주 이씨는 고려 말에 광주 지역에서 아전을 지낸 이당李唐을 시조로 삼고 있다. 그들의 족보에 보면 그 조상들이 신라 때 칠원漆原(현재의 경남 함안군에 병합)에서 일종의 부족 사회를 이루고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자성李自成을 시조로 하여 칠원성에서 성백을 세습하여 오던 그들은 신라의 모든 성이 고려 왕건에게 항복한 뒤에도 “마의태자麻衣太子만을 왕王으로 섬길 뿐 왕건에게는 굽힐 수 없다.” 하여 끝까지 항거하므로, 크게 노한 왕건이 대군을 이끌고 친히 칠원성을 함락시킨 뒤 이씨 성을 가진 일족들을 모두 체포하여 회안淮安(현재의 경기도 광주) 지방 관헌들에게 노비로 삼도록 하였다. 그렇게 광주 일원에서 노비로 살던 광주 이씨 일족은 고려 말에 들어와 이당이 생원이 되고, 그 아들들이 크게 이름을 떨침으로써 가문이 급속히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709_134.jpg가문을 일으킨 이당
광주의 아전으로 있던 이당이 가문을 일으키게 된 과정은 설화로 전해 내려온다.

“고려 말에 광주 고을의 원님이 낮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누런 용 한 마리가 자기 집 뜰에 있는 나무에 걸터앉아 있었다. 꿈을 깬 원님이 이상히 여겨 뜰에 나가 나무 위를 올려 보니 자기의 아전인 당唐이 나뭇가지에 다리를 걸치고 잠을 자고 있었다. 평소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고 있던 터라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원님은 벙어리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 고을 원님의 사위가 된 이당은 슬하에 아들 다섯 형제를 두었는데 모두가 과거에 급제를 하였다. 아전의 자식으로 5형제가 전부 과거에 급제한 사실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모두가 부러워하였다. 그중 둘째가 유명한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으로 고려 말 정몽주 등과 함께 높은 학문으로 이름을 날렸고, 그의 집이 있던 고을은 오늘날 서울의 둔촌동이 되었다.

처음에는 본관을 회안으로 하다가 940년(태조 23)에 지명이 광주로 개칭됨에 따라 광주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광주 이씨는 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188명, 정승 5명, 문형(대제학) 2명, 청백리 5명, 공신 11명을 배출했다.

주요 인물들
둔촌 이집은 고려 충목왕 때 문과에 급제, 정몽주, 이색, 이숭인 등과 깊이 사귀었는데 공민왕 때 국정을 전횡하던 신돈을 논박하였다가 포살령을 받고 친구 최원도가 있는 영천으로 피신했다가 신돈이 살해된 후에 돌아왔다.

이집의 세 아들은 크게 이름을 떨쳤는데, 큰아들인 이지직李之直은 형조참의를 지냈고 태종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둘째 이지강李之剛은 좌참찬을, 셋째 이지유李之柔는 사간을 지냈다. 또 이지직의 아들 이장손李長孫은 사인舍人을 지냈고, 이인손李仁孫은 세조 때 우의정에 이르고, 이예손李禮孫은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그중 이인손의 다섯 아들이 조정에 중용되었는데, 큰아들 이극배는 영의정과 광릉부원군에, 둘째 이극감은 형조판서 광성군에, 셋째 이극중은 광천군에, 넷째 이극돈은 이조판서 광원군에, 다섯째 이극균은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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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조선 성종 조에는 ‘팔극조정八克朝廷’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팔극조정이라 함은 극克 자를 쓰고 있는 광주 이씨 문중의 8명이 영의정을 비롯해 각종 판서와 중요 직책을 역임하며 조정의 대소사를 쥐락펴락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그렇게 하여 광주 이씨는 조선 초기 제일가는 명문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광주 이씨의 기운을 왕도 부러워했는데 예종이 이인손의 묘를 이장시키고 세종대왕의 묘로 삼는다던가, 성종이 아들(연산군)을 낳을 때 이극배의 집에서 낳게 한다던가 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선 초기 번성했던 광주 이씨는 갑자사화 등 각종 사화에 연루됨으로써 일족 30여 명이 몰살을 당하는 멸문의 화를 당하기도 했다. 이극감의 아들 이세좌와 손자 4명이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다. 하지만 훈구파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조광조 등 명문 사림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반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움으로써 가문이 다시 일어났다. 그렇게 조선조 광주 이씨는 명문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침을 겪어야 했다. ‘오성과 한음’의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역시 선조 때에 광주 이씨 가문을 빛낸 인물이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대제학이 된 그는 38세에 우의정, 42세에 영의정에 오른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명나라에 가서 탁월한 외교 수완으로 5만의 원병을 끌어들여 서울 수복에 수훈을 세웠다.

근대 인물로는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이종훈이 있고, 이태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로 유명하다. 이태영의 남편은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 아들은 정대철 전 의원이다. 이정재(자유당 정권시절 정치깡패), 이종환(전 삼영그룹 회장), 이중재(전 국회의원) 등의 인물과 함께 이순재(배우), 이수성(전 국무총리), 이용훈(전 대법원장), 이주영(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미연(배우), 이윤석(개그맨), 이승엽(야구선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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