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씨 (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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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廣川 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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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董씨의 기원 
동董씨의 연원은 BCE 2250년경 중국 황제黃帝의 6세손 류숙안飂叔安의 아들 부父가 순舜 임금으로부터 동董씨의 성을 하사받은 것이 시초가 된다. 계보는 전한前漢의 대학자 동중서董仲舒로부터 시작된다. 동중서는 한무제漢武帝에게 권하여 유교를 국학으로 삼게 하였다. 그는 유학자로서 유학사상을 체계화했을 뿐 아니라 통치이념의 지도 원리로 기틀을 잡은 거성이었다. 우리나라 동씨는 동중서의 43세손 동승선董承宣이 고려 말기에 명나라의 접위사接慰使로 들어와 조선 개국과 함께 출사한 후 공을 세우고 영천군榮川郡(경북 영주榮州)에 봉록되고 함경도 북청의 이곡泥谷에 살면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동씨는 동승선의 봉군지封君地였던 영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고 함경북도 명천明川 지방에 살던 후손들이 원주原州로 분관하는 등 같은 뿌리이면서도 관향을 달리하다가, 조선 단종 때의 이첩移牒(받은 공문을 다른 부서로 다시 보내어 알림)으로 다시 영천이라 하였다 한다.

그 후 정유재란 때 명明나라 제독으로 원병을 이끌고 우리나라에 온 동일원董一元의 소장所藏 문서를 근거로 하여 시조 동중서의 출생지인 중국의 광천廣川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광천은 중국 북부지방의 하북성 조강현棗强縣 광천진廣川鎭으로 지금의 북경 인근이며 중국의 주요 산업지대로 유명하다. 중국에서는 양씨楊氏가 동씨董氏와 같은 조상의 후예로 알려져 있다.

동씨 주요인물
동승선의 아우인 동인선董印宣은 아버지 친구인 서달徐達의 천거로 조선 태조 때 지휘사指揮使가 되어 전공을 세워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에 올랐다. 그래서 광천 동씨는 동중서를 시조로 받들고 영천군 동승선과 이부상서 동인선을 각각 1세조로 받들며 세계를 이어왔다.

동승선의 손자 동덕란董德蘭은 공조시랑(정4품 차관)을, 현손 동보하董寶夏와 동상하董尙夏는 공조전서(정3품 장관)를 역임하여 태자태보太子太保(정1품)에 오른 동학정董學政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한편 동일원의 아들 동창순董昌順은 안주목사安州牧使를 지냈으며 동대순董大順의 큰 아들 동한필董漢弼은 인조 때에 선공감역繕工監役(토목·영선을 맡아보던 관아의 벼슬)으로 있다가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와의 굴욕적인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지리산에 은거한 후 누차에 걸친 조정의 부름에도 불응하고, 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유언했다고 한다. 동희방董希芳의 아들 동응란董應蘭은 1624년 부원수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향병鄕兵을 일으켜 난리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진무원종振武原從 1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우봉현감牛峯縣監을 거쳐 갑산부사甲山府使로 나갔다. 그 밖의 인물로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종4품 무관)을 지낸 동혜진董惠震과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종2품)을 역임한 동정란董廷蘭이 유명하였으며 동하욱董夏旭은 공조참판(종2품 차관)에 올라 부호군副護軍(종4품)을 지낸 동희경董禧景과 부사府使를 역임한 동기연董基衍, 현감縣監을 지낸 동진호董鎭鎬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한편 동씨들이 함경도 단천端川, 명천明川, 북청北靑 등으로 이주 정착하여 살게 된 것은 세종 때의 이른바 ‘입북전어명入北前御命’이 계기가 되었다. 세종 4년 북변육진北邊六鎭을 개척하고 여러 도민道民의 이주를 명하였다. 이때 동씨의 본관은 광천廣川이므로 특별히 ‘천川’자가 든 고을에 가서 살라는 명에 따라 풍천豐川과 영천榮川에 사는 이들은 그대로 세거하게 되었고 동안미董安美와 동안의董安義의 후손은 함남 단천丹川으로 동안우董安宇는 함북 명천明川으로, 그리고 동안리는 함남 북청北靑(양천楊川)으로, 동안국董安國은 경기도 양평楊平으로 옮겨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주요 집성촌은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福貴面과 북청군 이곡면泥谷面, 함흥시 관동館洞, 그리고 함북 명천군 하가면下加面, 경남 김해군 이북면二北面과 전북 진안군 상전면上田面 일원 등이다.

〈참고자료〉
김동익, 『한국성씨대백과 성씨의 고향』, 중앙일보사, 1989
김태혁, 『한민족 성씨의 역사』, 보문서원, 2015
수원일보 2012년 5월 2일자
〈참고사이트〉
뿌리를 찾아서(http://www.rootsinfo.co.kr)
통계청 홈페이지
위키 백과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董豊信

동씨 현대 인물로는 동풍신董豊信(1904~1921)이 유명하다. 그녀는 함경북도 명천明川 출신으로 1919년 3월 15일 하가면 화대동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동풍신은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어 악랄한 고문 끝에 17살의 꽃다운 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追敍하였다. 동풍신은 유관순 열사와 같은 나이에다가 유관순이 아우내장터를 이용하여 만세를 불렀다면 동풍신은 화대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유관순의 아버지가 일제의 총검으로 현장에서 죽어 간 것과 동풍신의 병든 아버지가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 간 것도 닮았다. [출처-수원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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