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 (제주) [STB영상]

한국주요성씨


고씨 (제주) [STB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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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대표 성씨하면 고高, 양梁, 부夫 3성姓입니다. 이 세 개 성씨는 한라산 북쪽 삼성혈의 신화로 탄생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라고 하는 삼신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번 호에는 제주濟州 고씨高氏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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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씨의 계통과 분파

 

우리나라에서 22번째로 많은 성씨가 고씨입니다. 증산 상제님의 종통을 전수받으신 태모 고수부님도 제주 고씨입니다. 고씨는 크게 2개 계통이 있습니다. 고을나를 시조로 삼고 있는 제주 고씨 계통과 고주몽을 시조로 하는 고구려 계통의 횡성 고씨로 나눠지는데요. 대부분의 고씨는 제주 고씨입니다. 그런데 제주 고씨에서 분관한 횡성 고씨도 있기 때문에 이 두 계통을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 계통의 횡성 고씨는 한자 高를 쓰고, 제주 고씨는 한자 髙를 써서 서로 구별하기도 합니다.


제주 고씨는 장흥, 개성, 연안, 청주, 안동을 비롯하여 30여 본으로 분관되어 내려왔으나 1983년부터는 모두 제주 고씨로 환적하여 제주 고씨 중앙종문회로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제주 고씨는 약 46만 7천여 명이 우리나라에 살고 있으며, 이중 43%는 서울과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본향인 제주도에는 약 4만 2천 명이 살고 있으며, 제주도 인구의 6% 정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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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주 고씨에는 9대 분파가 있습니다. 장흥 고씨라 불리는 장흥백파, 옥구 고씨라 불리던 문충공파, 횡성 고씨라 불리던 화전군파, 개성 고씨라 불리는 양경공파, 청주 고씨라 불리는 상당군파를 비롯해서 영곡공파, 전서공파, 문정공파, 성주공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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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씨는 제주도에서 비롯된 성씨이지만 고려 시대에 육지로 진출하면서 지금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은 임진왜란 때 삼부자 의병으로 유명한 고경명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지금도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 창평리는 고경명의 둘째 아들인 고인후의 후손이 이곳에 옮겨 와 살면서 집성촌이 형성된 마을입니다. 이외에도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원지리, 울산광역시 중구 성동마을, 북구 가대마을,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둔둔2리를 비롯해 전국에 크고 작은 집성촌이 있습니다.


 

삼성三姓 신화에서 시작된 고씨

 

대전 뿌리공원에 있는 제주 고씨 조형물을 보면 시조와 역대 인물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고씨는 제주도 고髙, 양良, 부夫 삼성三姓신화와 탐라왕국의 시조 고을나왕髙乙那王의 역사가 있으니 자랑스러운 왕손이다. 고씨 왕세기는 당요갑자唐堯甲子에 탐라국耽羅國이 건국되어 제45대 고자견왕髙自堅王까지 왕치 시대를 통치하고 고려에 병합됨에 제46대 왕자 고말로髙末老 공公이 초대 성주로 작위를 받고 탐라 민정을 조선 태종 때 제17대 성주 고봉례髙鳳禮 공公까지 다스렸다. - 뿌리공원 『제주 고씨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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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조형물에서 밝혔듯이 제주 고씨는 제주도 삼성三姓 신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삼성 신화는 고려사를 비롯한 다수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高, 양良, 부夫 삼성 신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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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제주도인 탐라耽羅에 아무도 살지 않을 때 한라산 북쪽 기슭 모흥毛興이라는 곳에서 삼신인三神人인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가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을 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동쪽 바다에 자주색 흙으로 봉한 목함이 떠내려와 건져 열어 보니 그 안에 자줏빛 옷에 관대를 한 사자使者와 아름다운 세 공주가 있었다. 사자가 두 번 절하고 엎드려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님이 세 공주를 낳으시고 나이가 성숙함에도 배필을 정하지 못하여 한탄하던 차에 하루는 궁궐의 누각에 올라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자줏빛 기운이 하늘에 이어지고 상서로운 빛이 영롱한 가운데 명산이 있고 그 명산에 삼신인이 강림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배필이 없으므로 신臣에게 명하여 세 분 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세 분 공주님과 혼례를 올리고 대업을 성취하시옵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동쪽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삼신인은 제물을 정결하게 갖추고 목욕재계를 한 후 하늘에 기도를 한 뒤에 세 공주와 혼인하고, 세 공주가 가지고 온 오곡 종자와 송아지, 망아지로 목축과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탐라국의 기초를 이룩했다. - 제주도 삼성三姓 신화


 

이처럼 삼성혈에서 탄생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는 각각 제주 고씨, 제주 양씨, 제주 부씨의 시조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삼성혈三姓穴에는 눈과 비가 많이 와도 쌓이거나 고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삼을나(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리기 위해 152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12월 10일이 되면 삼성혈 앞에 있는 제단에서 건시대제를 올리고 있으며, 이 건시대제乾始大祭는 조선 시대에는 국제國祭로 올리다가 지금은 제주도제로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을나의 위패가 봉안된 삼성전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세 성씨의 후손들이 모여 춘추대제春秋大祭를 봉향하고 있습니다. 이 삼성혈 외에 또 어떤 유적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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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있는 혼인지가 있습니다. 이 혼인지는 삼신인이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로 삼아 혼례를 올린 곳입니다. 혼인지 옆에는 삼신인과 벽랑국 삼공주가 신방을 차린 동굴로 알려진 신방굴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들어가는 입구는 한 곳이나 안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동굴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삼공주가 도착한 곳으로 알려진 장소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해변인데 이곳을 연혼포라고 부릅니다. 또한 삼공주가 도착할 무렵에는 황금빛 노을이 출렁거렸다고 하여 연혼포를 황노알로 부르기도 합니다.


수렵 생활을 하던 삼신인이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한 후 한라산 기슭에서 각각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거주지를 정하는데 그렇게 하여 정한 곳이 제1도와 제2도와 제3도라고 합니다. 그때 화살이 명중한 돌을 한데 모아 삼사석三射石이라고 하는데 조선 영조 11년 제주목사 ‘김정’이 삼신인의 활솜씨에 감탄하여 이를 기념하고자 삼사석이란 비碑를 세우고 시를 지어 추모하기도 했습니다. 삼신인이 화살을 쏜 곳은 사시장올악이라고 하는데 한라산 중턱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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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씨의 시조, 고을나

 

이처럼 삼을나로부터 탐라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고을나를 시조로 모시는 제주 고씨는 어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제주시 중앙로에는 제주 고씨 종묘인 탐라원耽羅苑이 있습니다. 이 탐라원은 시조 고을나왕을 비롯한 역대 왕 45위 신위와 역대 성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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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나왕이 제주를 창시할 때 그 역사에 탐라국이 있었습니다. 45위의 왕이 탐라국을 통치했고 고려 시대에 17위의 성주가 통치했는데 그런 기록은 있지만 실제로 형상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21세기에 이르러 고髙씨를 중심으로 한 후손들이 탐라국 왕과 성주를 모시는 사당을 조성하자고 해서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묘인 고려조 중서시랑 평장사 선조의 묘가 있는 여기를 제궁동산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왕위전과 성주전을 지어 놓고 매년 4월 9일 제를 지내고 있는 곳을 탐라원耽羅苑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래서 탐라원은 제주 역사의 성지임과 동시에 고髙씨의 시조를 모시고 있는 성지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 역사와 마음의 구심점이 탐라원입니다.

고을나왕 이후 45대를 이어 탐라국을 통치하다가 고려 시대로 넘어오게 됩니다. 고대 제주민들은 삼신인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삼성혈 근처에 광양당이 있는데 이곳에서 제를 지내며 안위를 위했을 것입니다. 고을나대왕은 탐라국을 창시한 탐라국의 시조이면서 고髙씨의 시조가 됩니다. - 고창실 고씨종문회 총본부 회장


 

신화의 섬 제주도는 처음에는 탁라乇羅라고 불렸습니다. 그리고 삼신산의 하나라고 여겨 신선이 사는 곳이란 의미의 영주瀛州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탁라 또는 탐라국은 제주도에 세워진 고대 왕국으로써 고려에 편입되기 전까지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하면서 독립 왕국으로 존재했다고 합니다.


 

제주 고씨의 주요 인물들

 

탐라국의 왕족인 제주 고씨는 과거에 급제하여 고려의 벼슬을 하면서 제주도를 벗어나 육지로 진출하게 됩니다. 이후 제주 고씨는 중앙의 명문가로 성장하여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게 되는데 어떤 인물들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말로髙末老는 시조 고을나의 46세손이며, 탐라의 마지막 왕인 45세 고자견왕의 태자입니다. 서기 935년 태조 왕건이 신라와 후백제를 정복한 다음 그 여세로 탐라국도 강제로 예속시키려 하는데 이에 고자견왕은 사신을 보내 화친을 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938년에 태자 고말로를 고려에 입조하게 합니다. 고려 태조는 탐라국의 오랜 왕통을 존중하여 고말로에게 성주, 왕자의 작호를 제수하고 탐라를 세습 통치하게 합니다. 고말로에게는 고유, 고강, 고소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이 번창할 수 있는 기틀이 만들어지고 장자인 고유는 고려 문종 때 우복야에 올라 고려에서 벼슬한 최초의 탐라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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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말로는 탐라국 태자로서 처음으로 고려에 입조하여 성주 작호를 받고 제1대 성주가 되었기에 제주 고씨에서는 고말로를 중시조로 삼고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인물로는 고득종高得宗이 있습니다. 그는 세종 9년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참의, 한성판윤,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는데, 명나라에 두 차례, 일본에 한 차례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에 활약이 많았습니다. 또한 제주의 향교를 중심으로 유학 진흥에도 큰 공적을 남겼습니다. 사후 문충공文忠公의 시호를 받게 됩니다. 고득종은 고태필高台弼, 고태정高台鼎, 고태보高台輔, 고태익高台翼 등 네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는 영예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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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인물로 누구보다 이름을 드러낸 사람은 임진왜란 때 3부자가 의병을 일으켜 순국한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종후, 고인후입니다. 고경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58년 왕이 직접 성균관에 나와 실시한 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다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게 됩니다. 호조좌랑, 전리, 정언, 교리를 지내고 승문원판교를 거쳐 동래부사가 되었고, 동래부사로 있다가 귀향하게 됩니다. 이어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0세의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광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합니다. 둘째 아들 고인후도 함께 순절했는데 그 자리에 없어 살아남은 큰아들 고종후도 ‘복수의병장’으로 다시 나가 진주성 싸움에 참가하였고, 나중에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 최경희 등과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했습니다. 나라에서는 고경명을 숭정대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예문관 대제학에 추증하고 충렬忠烈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광주光州에 고경명과 종후, 인후 3부자를 기리는 포충사褒忠祠를 지어 충절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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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고석진은 면암 최익현의 수제자이자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며, 대한제국의 군인이자 개화파 정치인인 고영근은 명성황후의 살해에 가담했던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을 일본까지 추적하여 암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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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씨와 북방 유목 민족과의 연관성

 

삼성 신화에서 시작된 제주 고씨는 고구려의 고씨와 관련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정반대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서기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고조선 문명권을 구성했던 고구려족, 양맥족, 부여족이 새 정착지를 찾아 동남 지역으로 대이동을 하게 됩니다. 바닷길로 각각 제주도에 도착한 이 세 부족이 연합하여 제주 최초의 고대국가인 탐라국을 세우게 됩니다. 이 건국 사건이 고·양·부 삼성인의 신화로 전해지는데 고을나는 고구려족 족장, 양을나는 양맥족 족장, 부을나는 부여족 족장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에 대한 문헌과 유물, 유적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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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인의 을나 호칭은 북방에서 이동해온 예맥족 호칭이며, 신당서 등 중국 측 고문헌에 보면 탐라국 국왕의 성을 부여, 고구려 왕족의 성명 중 하나인 유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984년 제주시 용담동 석곽무덤에서 철제 장검 2점이 발굴되었는데 이 장검은 한반도 남쪽에는 없는 것으로 만주 길림성과 대동강 이북의 고구려 영역에서만 발견된다는 점입니다. 이 외에도 제주도의 수혈주거지가 만주 등 북방족의 수혈주거 양식과 동일하고 삼을나가 거주지를 정할 때 사용한 활쏘기가 맥족의 관습이라는 것을 보면 탐라를 건국한 세력이 북방에서 온 고구려, 양맥, 부여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탐라국 형성 초기 유적과 유물들이 제주도 북방 해안에 집중된 점을 보면 이러한 사실들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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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씨가 북방 유목민족에서 왔는지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제주 고씨의 뿌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섬, 제주도의 성씨인 제주 고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삼성인의 신화를 간직한 만큼 신비로운 내용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성씨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시간, <한국의 성씨>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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