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기원은 1277년 몽고군의 고려침략 때 곡주를 증류하여 소주를 만드는 비법 전수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몽골 침략 당시 레반틴 증류법이 소개된 시기(1231~1259년)에 레반트,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침략 당시 아라크의 증류법을 터득한 위안 몽골인들이 도입한 것이다. 그 당시 수도였던 개경시 주변에 양조장이 설치되었다. 개성의 주변 지역에서는 소주를 여전히 아락주라고 부른다. 한국 현대 소주의 직접적인 뿌리인 안동소주는 이 시기 몽골의 물류기지가 있던 안동시에서 자조주로서 시작되었다.
원래 진로眞露 소주燒酒는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술이었다. 진로의 창업주 우천友泉 장학엽張學燁(결성장씨) 회장은 지난 1923년 4월, 황해도 곡산공립보통학교에 교사로 부임해 조선어를 가르쳤다. 당시 학교의 교장은 일본인이었으나, 장 회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꿋꿋이 조선어를 가르쳤다. 민족 문화를 말살하고 조선어를 짓밟기 위한 일본에 저항하며, 교육자로서 또 다른 독립운동을 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발각돼 결국 학교에서 해고를 당했다. 장 회장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이에 자신이 직접 학교를 세워 우리말을 교육하겠다고 결심하고, 그 설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다. 그 사업으로 양조장인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한다. 이때 상표를 ‘진로(眞露)’로 정했다. 이 제품이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진로 소주의 효시가 된다. 교육자로서의 꿈이 남아 있던 그는 해방 이후 1946년 진지소학교, 진지중학교, 진지여고 등을 개설해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사업 기반을 모두 잃었으나 1954년 서울에 서광주조를 세워 재기했다. 한국 최초의 애니메이션 광고 등 독특한 마케팅을 펼치며 1970년대 소주 시장 1위에 올랐다. 1974년 장학엽은 우천학원을 세워 다시 한번 교육자로서의 숙원도 달성했다. 이듬해엔 사명社名을 ‘진로眞露’로 바꿔 오늘날의 하이트진로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