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연의 역사를 문헌에서 살펴보면 지금으로부터 1,300년전 신라 진덕여왕 원년인 647년에 비담琵曇과 염종廉宗이 반란시 김유신 장군이 연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卷41 김유신 상조上條 나온 것이 정사에 나타난 최초의 기록이다.
고려말의 명장 최영崔瑩 장군이 탐라耽羅에서 목호牧胡(몽고인 목축자)의 난을 평정할 때에 병선이 탐라에 근접하였으나 주위가 절벽이라 한꾀를 내었는데, 수 많은 큰연을 만들어서 그연에다 불을 달아 지자성枳子城을 정벌하였다고 한다. 또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상원上元 조에 “諺傳昉自 崔瑩伐耽羅之役 최영장군이 탐라를 정벌할 때에 시작된 것”이라 하였다. 따라서 연의 시원을 최영장군부터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조선조에는 세종대왕(1455년) 때에 남이 장군이 강화도에서 연을 즐겨 날렸다는 기록과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의 방편으로 연을 이용했다는 사람들의 구전기록이 전한다. 또 일본에서 편찬된 [왜사기倭史記]에 의하면 진주병영 별군관別軍官 鄭平九가 발명한 “비거飛車: 세계 최초의 비행기”로 인해 왜군들이 작전을 전개하는 데 큰 곤욕을 치렀다라고 하는 기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