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8호인 ‘봉천대(奉天臺)’는 강화도 북쪽의 봉천산(奉天山, 291m) 정상에 있다. 화강암을 다듬어 쌓아 올린 정방형의 사다리꼴 제단으로, 하부의 폭은 7.2m, 상부는 동서로 6.2m, 남북으로 5.8m이며, 높이는 5.5m이다.
조선조 숙종 때 저술된 강화읍지인 『강도지(江都誌)』에 의하면 고려조에는 나라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제단인 ‘축리소(祝釐所)’였다고 하며, 조선 중기 이후 봉수대로 사용되었다.
봉천대의 유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고려조 예종(睿宗, 재위 1105∼1122) 때 하음현(河陰縣)에 살던 한 할머니가 새벽에 물을 길으러 연못에 갔는데, 황홀한 서기가 하늘에서 연못으로 뻗치며 우레같은 소리와 함께 물속에서 돌 상자가 솟아나 열어보니 비단보에 옥동자가 싸여 있었다. 할머니가 이 아이를 임금께 바치자 임금은 궁중에서 양육하라는 명을 내린 후 노파가 봉헌(奉獻)하였다고 하여 성을 봉(奉), 국가를 보우(保佑)할 인재라 하여 이름을 우(佑)로 지었다. 그리하여 봉우가 하음 봉씨(河陰奉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봉천대는 봉우의 5대손인 봉천우(奉天祐)가 시조를 구해준 할머니의 은혜를 기리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다. 봉천우는 봉천산 아래에 봉은사(奉恩寺)를 짓고, 5층 석탑과 할머니를 닮은 불상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보물 제10호인 ‘장정리 5층 석탑’과 보물 제615호인 ‘장정리 석조여래입상’이 그것이다. 석조여래입상의 바로 뒤편에는 1983년에 이장하여 조성한 봉우의 묘역이 있다.
현재의 하점면은 고려조에 하음현(河陰縣)이었으며, 1914년에 간점면(艮岾面)과 병합하면서 하점면(河岾面)으로 개칭되었다. 하점면 부근리의 ‘봉가지(奉哥池)’라는 웅덩이가 하음 봉씨의 발상지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