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의 유래-義城金씨
젓갈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음식이다. 한나라 무제가 동이족을 쫓아서 산동 반도에 이르렀을 때, 어디서인지 코에 와 닿는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보게 하니 어부들이 물고기 창자와 소금을 넣고 흙으로 덮어 둔 항아리에서 나는 냄새였다. 이것이 바로 젓갈이었다고 한다. 오랑캐를 쫒다가 얻은 음식이라 하여 젓갈을 '축이逐夷'라 이름 지었다. 이 같은 기록으로 미루어 동이족이 젓갈의 문화를 유지하고 발달 시켜왔음을 알 수 있다. B.C 3∼5세기의 중국 「이아爾雅」라는 사전에는 "생선으로 만든 젓갈을 ‘지', 육으로 만든 젓갈을 '해'라 한다"고 하였고, 그 후의 문헌에는 지, 자, 해 등이 나온다. 5세기경의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장에는 누룩과 메주, 술, 소금으로 담그는 직장법과 수조어육류, 채소, 소금으로 담그는 어육장법이 있다."고 씌어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를 보면 신문왕 8년(683년)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이할 때 납폐품목에 '장'과 함께 '해'가 적혀 있다. 해는 젓갈을 말한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는 어패류를 소금에만 절이는 저염해, 젓갈과 절인 생선에 익힌 곡물과 채소 등을 합하여 숙성시키는 식해로 크게 나뉘었다.
중종때 판서를 지낸 청빈한 선비 김안국(의성김씨)이 인심을 잃어가며 재물을 모으고 있는 한친구에게 훈계의 편지를 띄었다. 그 편지 가운데 "밥 한 숟가락에 새우젓 한 마리만 앉으면 먹고 살 수 있는데" 하는 대목이 있다. 새우젓은 한국사람이 흰밥을 먹구멍에 넘길 수 있는 최소 단위의 건건이요, 오랜빈곤 수천년을 살아낼 수 있었던 최저의 생존조건이었다.
삼남 지방의 속어에 '덤통 웃음'이라는 말이 있다. 목적을 위해 계략적으로 웃는 웃음이다. 새우젓장사는 젓갈이 들어 있는 알통과 젓갈국물이 들어 있는 덤통 둘을 나란히 메고 다녔다. 젓갈을 산 사람들이 덤통을 바라보며 히죽이 웃어 새우젓장수의 애간장을 간지럽히면, 장수는 덤통을 열고 젓국을 더 펴주었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