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양식의 유래-金海金씨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옛날부터 김을 먹기 시작했다. 삼국유사에 김이 '신라시대 왕의 폐백 품목'이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먹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김이란 용어의 유래를 찾아보면 먼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해의海衣란 명칭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이라는 현대어가 해태海苔라고 표현된 최초의 기록은 1817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의 저서 ≪경세유표 經世遺表≫에 나타나고 있다.
'김'으로 불리게 된 이유
인조 18년에 1640년대에 태안 광양에 김여익金汝翼이 최초로 김 양식을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래서 김여익의 성을 따서 김이라고 불린다는 설이 있다. 김여익은 영암군 학산면 몽해夢海에서 태어나 1636년 병자호란이 일자 의병을 일으켜 종형 김여준을 따라 청주에 이르렀는데,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하게 되자 돌아온 뒤 고향을 떠나 장흥長興 동백동冬栢洞을 거쳐 1640년 태인도太仁島로 들어가 살면서 김을 양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1714년(숙종 40) 당시 광양현감이었던 허심이 지었다는 김여익의 묘표墓表에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이 묘표는 남아 있지 않으나 김해 김씨 족보에는 남아 있다고 한다. 후손들은 해태를 ‘김’이라 한 것은 김여익이 태인도에서 김의 양식법을 창안하였는데, 하동장河東場에서는 태인도의 김가金家가 기른 것이라 해서 “김”이라 했다고 한다. 참고로, 《열양세시기》(1819)와 《동국세시기》(1849)에는 정월 대보름에 김(海衣)과 참취(馬蹄菜)로 밥을 싸먹는 풍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김밥의 원형으로 보인다.